태국 국왕서거에 따른 태국관광청 공지
작성자:팝콘
등록일:2016/10/19 00:00:00

<태국 관광청 공지>
 
태국은 지금 푸미폰 아둔 야뎃 국왕폐하의 서거에 따른 공식적인 애도기간 중 입니다.
 
태국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관광객이 많은 국가로 1년에 1,80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다녀갑니다.

국가 산업에서 관광업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 할 수 없는 셈입니다.


태국 관광청은 "모든 교통서비스와 은행, 병원 및 기타 공공 서비스가 평소와 같이 운영될 것"이라면서 "태국 당국은 관광 산업을 위해 안전과 보안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태국정부관광청은 모든방문객들이 계획중인 여행을 정상적으로 진행해주시기를 바라며 아울러 다음사항을 알려드립니다.

 
• 많은 태국국민들은 애도의 표시로 검은색, 또는흰색의 옷을 입을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반드시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되도록 점잖고 화려하지 않은 색의 옷을 입어주십시오.
 
• 애도 분위기에 반하는 부적절하거나 무례한 어떠한 행동도 삼가주십시오.
 
• 장례식을 준비할 왓프라깨우(에메랄드사원)와 왕궁을 제외한 다른 관광명소들은 평소와 같이 문을 열 것입니다.
 
• 정부는 바, 나이트클럽과 같은 유흥업소들에게 이 기간동안의 영업하는 것에 대해서 재고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결정은 각 업장의 소유주가 할 것입니다.
 
• 대부분의 전통-문화행사는 정상적으로 열릴 것 입니다만 존경을 표하는데 적합하거나 국왕 폐하를 기리는 행사로 바뀔 수 있습니다.
 
• 모든 교통편, 은행, 병원 등의 공공업무는 평소와 같이 운영됩니다.
 
• 태국국민과 외국인들 모두가 태국을 어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관련기관들은 안전과 보안을 강화하였습니다.
 

 
태국정부관광청에서는 이 시기에 여행을 하시는 모든 외국인 여러분들의 이해와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원문)
http://www.tatnews.org/recommendations-regarding-mourning-period-for-his-majesty-king-bhumibol-adulyadej/




<태국 국왕에 대한 소개>


태국의 제9대 왕인 푸미폰아둔야뎃(BhumibolAdulyadej, 라마 9세, 1927~2016, 재위: 1946~2016)도 법왕과 신왕의 모습을 두루 갖춘 전통적 국왕의 특징을 오롯이 계승했다.

푸미폰아둔야뎃 대왕은 짝끄리 왕조의 9대 왕, 즉 라마 9세로, 공식 명칭은 프라밧솜뎃프라뽀라민타라마하푸미폰아둔야뎃마히뜨라티벳사라마티버디짝끄리나리버딘사야민트라티랏버롬마낫버핏(타이어: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มินทรมหา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มหิตลาธิเบศรรามาธิบดีจักรีนฤบดินทรสยามินทราธิราชบรมนาถบพิตร)이다.

1927년 12월 5일 탄생하여 1946년 만 19세에 국왕으로 등극한 이래 2016년까지 70년 126일 동안 왕위를 지켜, 재위 당시 태국 역사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현존하는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집권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부친이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 중일 때 태어난 푸미폰 대왕은 이후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스위스에서 불어, 독어, 영어 등을 공부하였다.

1946년 친형인 마히돈 왕(라마 8세)이 즉위 12년 만에 승하하자 9대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좌를 계승한 푸미폰 대왕은 섭정을 세우고 스위스로 다시 건너가 사회학과 정치학을 수학하며 국왕으로서 자질을 키운 뒤 1950년 귀국하여 대관식을 치른다.


국왕에 즉위하자마자 푸미폰 대왕은 어버이와 같이 백성을 돌보는 탐마라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955년 10월 22일에서 11월 5일까지 불교도로서 출가하여 수행을 하였고, 국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살피기 위해 1955년부터는 이전의 왕들이 찾지 않던 낙후된 지역을 방문하여 열악한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국왕개발계획(RoyalProject)을 실시하였다.
그는 이 국왕개발계획을 통하여 국가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었고 또한 국왕으로서 카리스마를 갖게 되었다.

국왕개발계획은 왕실 자산과 민간 자본을 이용한 수자원 및 관개 개발, 토지 개발, 농업 개발, 연구 개발, 보건위생 개발, 교육 개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화전 경작과 아편 재배로 국제적 문제를 야기하던 고산족을 위한 특별 계획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산악 지역에서 재배 가능한 현금 작물을 권장 보급하여 고산족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선해 냄으로써 소수 종족의 삶의 개선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지속되어 낙후된 동북부 지역의 녹색 혁명을 목표로 개발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농민들을 위한 인공강우 기술을 직접 개발하여 왕 자신이 특허를 받기도 하였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푸미폰 대왕의 노력을 인정하여 1988년 막사이사이상(Magsaysay賞)을 수여하였으며, 특히 고산족의 복지를 위한 개발계획은 국제연합(UN)과 미국, 캐나다, 대만 등의 재정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국왕개발계획은 푸미폰 대왕의 재위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었다.
푸미폰 대왕은 신왕의 면모를 갖춘 국왕으로 태국 국민들에게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여느 입헌군주제 국왕과는 달리 상징적 왕권 행사에 안주하지 않았고, 군부 쿠데타 등으로 정국이 불안한 때마다 높은 도덕적 권위로 시국을 안정시키는 데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

‘푸미폰’은 나라의 힘을 뜻하고, ‘아둔야뎃’은 대적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자를 의미하는데, 그 이름에 부합하듯이 푸미폰 대왕은 여느 입헌군주제 군왕의 지위를 넘어선 절대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집권 중 대왕의 칭호를 받은 국왕으로서 태국 국민들의 숭배를 한 몸에 받았다.

한편 푸미폰 대왕은 2009년부터 폐렴, 저혈압 등의 질환으로 잦은 병원 치료를 받다가, 2016년 10월 13일 방콕 시리라즈병원에서 향년 88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푸미폰 대왕의 서거에 태국 정부는 1년간의 추모 기간을 선포하고, 30일 동안 모든 축제를 금지하는 등 깊은 애도를 표했다.


(출처 이병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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